새로 서는 학교 이름을
교육감님께 보낸 건의서이다.
이 글을 참고하였는지는 모른다. 일부가 수정된 것 같기도 하고.
서평-서평, 조야-조야, 격산-대동, 대남-대남, 북현-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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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교육감님께
본시 교육행정의 책임을 맡고서 성실하고 창조적인 시민 육성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겠습니까?
외람된 글월이오나 끝까지 읽어주시고 잠시나마 제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신다면 고맙겠읍니다.
새로 생기는 국민 학교 이름을 우리말이나 우리글로 지으면 어떨까 하여 감히 필을 들었읍니다.
존경하는 교육감님!
새로 생기는 교명은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짓게 되며 꼭 한자로 표기할 수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본 시교위가 내년에 265억원을 들여 아홉 학교를 새로 짓는다는 기사(11.30.자 소년조선일보 1면)을 읽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한결같이 어색하고 거리감이 있어 자라나는 어린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평, 조야(행정동명인 줄 알지만), 격산(‘산격’의 거꾸로 된 말), 대남(대구 남구에서 온 말인 듯하나 흡사 북괴의 ‘대남공작’, ‘대남방송’ 같은 느낌), 북현(‘복현’과 비슷하여 혼란이 올 듯) 등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 얼른 머리에 와 닿지 않으며 하필이면 왜 그렇게 짓게 되었는지요?
유치원의 경우를 봅시다.
새싹, 해바라기, 샛별, 달나라, 무궁화, 보리수, 문화, 보배, 색동, 장미 등 곱고 아름답고, 뜻이 깊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유치원이 사립인 줄 아니다. 사림유치원의 이름은 고고 아름답고 어린이들로 하여금 희망, 꿈, 이상, 의지를 심어주는데 반해 공립유치원 일부와 공립 국민 학교의 이름은 천편일률적으로 한자식입니다. 기존 국민 학교는 그래도 同名을 따서 지었으나 새로 서는 학교는 동명도 아니면서 어렵기만 합니다.
그 학교에 재학하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학교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아니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뜻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애교심, 애향심이 저절로 생기지 않겠습니까?
존경하는 교육감님!
교명을 동물이나 새, 나무 이름, 꽃 이름 또는 뜻깊은 추상명사 이를테면 화랑, 통일, 슬기 등으로 지어서 바로 그것들이 그 학교를 상징하는 교목, 교화 등이 되어 어린이들로 하여금 꿈과 의지를 갖도록 하거나 학교가 생기는 곳의 옛 땅이름이나 역사적 뜻깊은 이름을 따서 지어 주인의식을 갖도록 함이 바람직할 듯합니다.
충남 대전의 ‘한밭’과 같은 순수한 우리말과 우리글이라면 더욱 더 국어사랑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저의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교육감님께서 하시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고 내내 평안하시길 빌며 이만 필을 놓겠습니다.
1982.12.1.
대구 국민 학교 교사 김국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