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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김씨 영사공파 대죽문중 세거비
한봄김국빈
2025. 4. 9. 09:17
世居碑(세거비)
世居碑(세거비)
金寧金氏 領事公派 大竹門中(김녕김씨 영사공파 대죽문중)
小白山(소백산)의 한 地脈(지맥)이 靈氣(영기)를 몰고 1逶迤(위이)起伏2(기복)하여 鶴駕(학가)를 左(좌)로 西南(서남)으로 뻗어 鳳逗嶺(봉두령=봉우제)에 맺혔다. 3其下(기하)에 4明村(명촌)이 生(생)겼으니 이름하여 한대(大竹=대죽)이다. 이곳은 倫理道德(윤리도덕)과 禮義廉恥(예의염치)를 世業(세업)으로 삼고 5孝悌忠信(효제충신)을 崇上(=崇尙숭상)하며 살아온 6嶠南(교남) 7華門(화문)인 金寧金氏(김녕김씨) 半千年(반천년)의 8世居地(세거지)이다.
우리 金寧金氏(김녕김씨)는 新羅(신라) 敬順王(경순왕)의 八世孫(8세손) 9諡(시) 文烈公(문열공) 10諱(휘) 時興(시흥)을 11貫祖(관조)로 모시고 十世(10세) 宗孫(종손) 諱(휘) 遵(준) 號(호) 晚池堂(만지당) 12敦寧府(돈령부) 13領事(영사)를 派祖(파조)로 하고 우리는 14其長派(기장파)로 내려왔다.
세를 넘어 六世孫(6세손) 諱(휘) 德恭(덕공) 號(호) 淸岡齋公(청강재공)께서 四百(4백)여년 前(전)에 이곳 大竹里(대죽리)에 入鄕(입향) 15卜居(복거)하시어 우리 모두는 이 大祖(대조)의 後孫(후손)이며 이때부터 大竹(대죽) 16望族(망족)의 歷史(역사)가 始作(시작)되어 17文翰(문한)과 18淸宦(청환) 歷代(역대) 19顯達(현달)한 祖上(조상)들이 20彬彬(빈빈)하게 되었다.
嘉善大夫中樞府事(가선대부중추부사), 折衝將軍龍驤副護軍(절충장군용양부호군), 通政大夫(통정대부), 出天之孝(출청지효) 등 21餘(여)는 22盡不錄(진부록)이며 現世(현세)에도 高級公務員(고급공무원), 碩博士(석박사), 法曹界(법조계), 敎育界(교육계) 등 傑出(걸출)한 賢裔(현예)들이 23世世不絶(세세부절)하고 있다.
이것은 오로지 大祖(대조)께서 남다른 삶의 經營(경영)으로 터를 닦아 至今(지금)까지 後孫(후손)들이 24不食之報(불식지보)로 鴻門(홍문)을 이루고 살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아! 萬物(만물)의 根本(근본)은 天上(천상)에 있고 人間(인간)의 根本(근본)은 祖上(조상)에 있다고 하니 祖上(조상)으로부터 附與(부여)받은 根本(근본)의 蔭德(음덕)을 오늘에 後孫(후손)이 敢(감)히 25豈忘(기망)하리오!
宗家後孫(종가후손) 釜慶大(부경대) 敎授(교수) 金錫泰(김석태)로부터 大祖(대조)께서 世居由來(세거유래)를 要請(요청)하여 追遠報本(추원보본)과 26彛倫之道(이륜지도)를 다하고자 금번에 後孫(후손)들이 相議(상의) 끝에 世居碑(세거비) 建立(건립) 追進委員會(추진위원회)를 構成(구성)한 후 全(전) 宗親(종친)이 參輿(참여)하여 27淨材(정재)를 모아 世居來歷(세거내력)을 돌에 새겨 後代(후대)에 傳(전)하고자 合論(합론)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領敦寧公派(영돈령공파)를 領事公派(영사공파)로 改稱(개칭)하게 됨을 아울러 告知(고지)하면서 이번 일이 어찌 山河(산하)와 같이 無窮(무궁)하지 않으며 萬人(만인)이 28皆讚共鳴(개찬공명) 아름답다하지 않으리오!
아마도 以後(이후)로 祖上(조상)의 蔭德(음덕)이 더욱 後孫(후손)에 29榮福(영복)으로 繁盛(번성)하리라.
30屠維(도유=己)31大淵獻(대연헌=亥) 32上冬節(상동절) 後孫(후손) 炳仁(병인) 幷序(병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