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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면 지명 유래

한봄김국빈 2018. 6. 22. 12:38

 

지보면 지명 유래

http://city.ycg.kr/ko/jibo/tour/place/

 

대죽리(大竹里)

 

본디 용궁현(龍宮縣) 신상면(申上面)의 지역이다.

'대나무가 무성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암천리(岩川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죽리(大竹里)'라고 했다.

 

한대[大:한-크다,밝다,竹:대나무]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십명지(十名地-10개의 유명한 곳)의 하나로 전해 오는 마을이다.

봉두령(鳳逗嶺)(봉우재 또는 봉화재)을 주봉으로 남쪽에 원방산(圓方山)이 있고, 동쪽은 주등포산(舟登浦山)이 좌청룡(左靑龍), 서쪽은 앞남산이 우백호(右白虎)를 이루고, 남쪽으로 낙동강(洛東江)이 흐르는 삼태기 형으로 된 정남향(正南向)의 마을이다.

 

'대나무가 무성하던 곳에 마을이 생겼다' 하여 '대죽리(大竹里)'라고 하며 예부터 <한대>라고 부른다.

고려(高麗) 태조(太祖) 5년에 권태사(權太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농부를 위하여 움막을 지어 주고 '분음막(分陰幕)'이라고 하였으니 신라(新羅)때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대죽리(大竹里) 북쪽 봉두령(鳳逗嶺)(봉우재 또는 봉화재) 밑에 법정(法井)골이 있는데 신라시대(新羅時代)에 법정사(法井寺)가 있었다고 하나 절터만 남아 있다(탑기塔基가 있다).

 

봉황(鳳凰)은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짝을 맞춘 이름이고 마을은 웃한대(上大竹) 아랫한대(下大竹)로 나누어 있었는데, 아랫한대는 파평윤씨(坡平尹氏)가 살고부터 신풍(新豊)’으로 개명하여 신풍리(新豊里)가 되었고, 웃한대는 마을이 커지면서 다시 동()쪽 마을과 서(西)쪽 마을로 나누어졌고, 옛날에 마을 사람들끼리 말싸움을 자주 하므로 이 마을 사람들이 주등포산(舟登浦山)을 개의 주둥이 같이 생겼다고 하며, 주둥이를 막으면 말싸움이 없어질 것으로 하여 주둥개산() ()허리에 말무덤(언총 言塚)을 만든 후부터는 말싸움이 없어지고 마을이 평화로워졌다는 전설이 있다.

 

주등포산(舟登浦山)은 두 가지 설이 있는 바

 

그 옛날 수천 년 전 낙동강(洛東江)물이 주둥포산(舟登浦山) 옆으로 흘렀으므로 그 곳이 배를 매어 두던 나루터였다고 하여 주등포산(舟登浦山)이라는 말도 있고,

 

또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로 산()의 모양이 배와 같다 하여 주()자를 따서 주등개산또는 개의 주둥이와 같다 하여 주둥개산이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마을 뒤의 황토재 아래 신씨들의 묘소가 있는데 길지라고 들었다고 한다.

아마 아래와 같은 연유인 듯하다.

 

마을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주등포산은 좌청룡, 신풍산은 우백호로 보고 있다.

 

마을 앞 입구 지금의 버스승강장 자리 바로 옆에 큰 돌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것은 선비의 도포 위에 매는 옥대의 고리를 상징한다 하였다.

옥대(玉帶)는 임금이나 관리의 공복(公服)에 두르던 옥으로 장식한 띠를 말하는데

이 마을이 지리학상으로 특이한 형상이라 한다.

 

그 돌에 정월 대보름 같은 날에는 금줄을 둘러놓고 치성을 드렸지 않았나 추측된다고 하였다.

또한 듬방논 가운데 큰 돌이 일곱 개 있었는데

그 돌을 칠성바위라 한다.

지금은 경지정리로 인하여 여기에 없다.

 

마을 서쪽의 작은 고개가 있는데 그 고개를 '원고개'라 한다.

원고개의 유래는 원님이 이 고개를 엄어 갔다는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 김창빈의 말씀에서-

 

 

대죽리(大竹里)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전후하여 밀양박씨(密陽朴氏)와 인천채씨(仁川蔡氏)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당시 여기 살던 춘천박씨(春川朴氏)는 퇴계(退溪)이황(李滉)의 외가(外家)이기도 하다.

 

임란후(壬亂後)에 김녕김씨(金寧金氏) 김덕공(金德恭)이 입향(入鄕)한 후 지금 대죽리(大竹里) 서쪽 마을은 김녕김씨(金寧金氏) 4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밀양박씨(密陽朴氏), 인천채씨(仁川蔡氏), 진주류씨(晋州柳氏) 등 여러 성씨(姓氏)가 살고 있다.

 

그리고 인맥으로 보면 조선초(朝鮮初) 권죽림(權竹林)(호 산해山海)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사육신(死六臣)과 동순(同殉-같이 의롭게 죽음)했고 성오당(省吾堂) 경주이씨(慶州李氏) 이개립(李介立)이 태어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