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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生活人)의 철학(哲學) / 김진섭(金晋燮)

생활인(生活人)의 철학(哲學) 김진섭(金晋燮) 철학을 철학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일은 아니니, 왜냐 하면, 그만큼 철학은 오늘날 그 본래의 사명—사람에게 인생의 의의와 인생의 지식을 교시(敎示)하려 하는 의도를 거의 방기(放棄)하여 버렸고, 철학자는 속세와 절연(絶緣)하고, 관외(管外)에 은둔(隱遁)하여 고일(高逸)한 고독경(孤獨境)에서 오로지 자기의 담론(談論)에만 경청(傾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학과 철학자가 생활의 지각(知覺)을 온전히 상실하여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부단히 인생의 예지(叡智)를 추구하는 현대 중국의 '양식(良識)의 철학자' 임어당(林語堂)이 일찍이 "내가 임마..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宣言書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 萬邦에 告하야 人類 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 萬代에 誥하야 民族 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장)하야 此를 宣言함이며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此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 發展을 爲하야 此를 主張함이며 人類的 良心의 發露에 基因한 世界 改造의 大機運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하야 此를 提起함이니 是ㅣ 天의 明命이며 時代의 大勢ㅣ며 全 人類 共存 同生權의 正當한 發動이라 天下 何物이던지 此를 沮止 抑制치 못할 지니라 舊時代의 遺物인 侵略主義, 强權主義의 犧牲을 作하야 有史 以來 累 千年에 처음으로 異民族 箝制(겸제)의 痛苦를 嘗(상)한지 今에 十年을 過한지라 我 生..

김진섭 《백설부(白雪賦)》

《백설부(白雪賦)》 -김진섭-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니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였으니, 부드러운 설편(雪片-눈조각)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지를 때, 우리는 어찌된 연유인지 부지중(不知中) 온화하게 된 마음과 인간다운 색채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 태고(太古)의 음향을 찾아 듣기를 나는 좋..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뭇군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군 각다귀들도 귀치 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 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

김동인 <감자>

감자김동인 싸움, 간통, 살인, 도둑,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제 이 위에 드는) 농민이었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 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저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정비석 <산정무한(山情無限)>

산정무한(山情無限) 정비석 내금강 역사(驛舍)에 도착. 어느 외국인의 산장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이 멋진 양관(洋館) 외금강 역과 아울러 이 한국식 내금강 역은 산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한 정다운 호대조(好對照)의 두 건물이다. 내(內)와 외(外)를 여실히 상징한 것이 더 좋았다. 십삼야월(十三夜月)의 달빛 차갑게 넘실 거리는 역 광장에 나서니, 심산(深山)의 밤이라 과시(果是) 바람은 세찬데, 별안간 계간(溪澗)을 흐르는 물소리가 정신을 빼앗을 듯 소란하여 추위는 한층 뼈에 스민다. 장안사(長安寺)로 향하여 몇 걸음 걸어가며 고개를 드니,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쭐우쭐 둘러선다. 기쓰고 찾아온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가고 금새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여마시니, 어느덧 간..

민태원 <청춘예찬(靑春禮讚)>

청춘 예찬(靑春禮讚) -민태원-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理性)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萬物)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

황순원 <소나기>

소나기 황순원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曾孫女)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요행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다. 다음 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 속을 빤히 들여다 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 보는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 울음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뜻한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고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 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