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마당/▶국어생활

존댓말

한봄김국빈 2010. 7. 24. 09:02
  • 조선닷컴에서 
  • 입력 : 2010.07.23 23:10

①"아저씨,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길 가던 젊은이). ②"아버님, 식사하세요"(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③"아버지가 편찮으십니다"(손자가 할아버지에게). ④"주례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결혼식 사회자). 이 중에 제대로 된 말은? 없다. ①은 "말씀 좀 여쭤보겠습니다"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요즘엔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도 나은 편이다. "뭐 좀 물어봅시다"라거나, 다짜고짜 묻기 일쑤다.

▶②는 "진지 잡수십시오"가 맞다. 젊은 세대에선 '말씀' '진지' '생신' '연세' '병환' 같은 어휘 자체가 실종됐다. '여쭈다' '잡수시다' '주무시다'도 좀처럼 듣기 어렵다. ③은 "아버지가 아픕니다"라고 해야 한다. 손위 제3자 이야기를 할 때도 3자가 듣는 이보다 손아래이면 낮춰 말해야 옳다. ④는 어법도 제대로 못 배운 채 무조건 높이다 보니 행위나 물건까지 존대하는 사례다.

▶국어학자들은 존댓말이 6·25 후, 산업화 초기에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나 먼저 먹고 나 먼저 가려는 마음이 앞서면서 남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면서다. 사람들은 존댓말을 쓰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낮아진다고 느낀다. 속담에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들고 온다'고 했다. 남을 배려하는 말씨를 쓰면 남도 나를 배려한다.

▶서울 신당초등학교가 3년 전부터 존댓말을 공용어로 썼더니 싸우거나 선생님에게 대드는 일이 확 줄었다고 한다. 어린이들끼리, 그리고 선생님이 존댓말을 쓰면서 어린이들이 스스로 존댓말을 듣는 인격체라는 걸 깨닫고 서로 존중하는 덕분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맥도날드'에서 존댓말을 배운다는 우스개가 있다. 우리 못지않게 존댓말이 까다로운 일본도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서 처음 존댓말을 알게 된다는 얘기다.

일본 교육 당국은 고민 끝에 몇 년 전 문답식 '경어지침'을 내놓았다. "왜 자기가 다니는 큰 회사를 소사(小社·작은 회사)라고 하고, 총명한 자녀를 우식(愚息·어리석은 자식)이라고 하는가." 답은 "자기와 관계된 것을 낮추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니까"다. 그래도 일본 가정에 전화를 걸었을 때 "우리 남편 주무시는데요"라는 황당한 말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당 정인보는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했다. 존댓말이 살아나면 우리네 심성(心性)에 난 모도 많이 깎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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