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마당/▶가족친지

섣달 초닷샛날은 호박떡 먹는 날

한봄김국빈 2011. 1. 8. 19:23

 

 

그러니까 50여 년 지났다. 반 세기가 훌쩍 지나갔네.

1960년대의 모습이다.

아버님께서는 떡을 참으로 좋아하시고 잘 잡수셨다.

쌀 한 되로 밥을 해 놓으면 다 못 잡수셔도 송편이나 떡을 해 놓으면 한참에 다 잡수시느까 말 다 했지.

그 때는 이런 날 저런 날 별식을 해 먹곤 했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내 기억이 확실한지 아사무사하다.

삼월 삼질이면 빼깃잎떡이나 참꽃떡

오월 단오면 무시루떡

유월이면 논매기 다 끝내고 온갖 적을 구워 며칠을 쉬는 푸꾸놀이

칠월이면 밀전병 만들어 용지라고 하여 벼논 한가운데 미루나무 꼬쟁이 꽂고 떡을 놓기도 하고

시월이면 잡귀를 물리친다고 붉은 시루떡을 해서 마루에 있는 큰 볏섬 위 용단지에 얹어놓고 빌고

동지면 온 나라가 다 아는 팥죽을 끓여 부엌에서부터 집안 곳곳에 팥죽물을 뿌려 잡귀를 쫗았고

섣달이면 초닷샛날 호박떡을 해 먹는다.

지금 가만 생각하면 아버님께서 떡을 좋아하시니까 섣달에는 별다른 일이 없이 그냥 지나가기가 서운하여 그냥 이름을 붙여 호박떡을 해 먹으면 잘 산다고 하셨다.

우리집만 그렇게 한 게 아니고 우리 이웃 다 그렇게 지냈다.

쌀은 1급미가 아닌 좀 험다리 있는 것으로 싸래기(싸라기) 등으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호박은 늙은 호박을 가을에 길게 썰어서 빨랫줄에 널어 바람과 했볕과 서리에 젖었다가 말랐다가 반복한 호박으로 흡사 대관령 황태 덕장이나 포항 과메기 덕장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호박의 닷맛이 더 진해진다.

그 오래 전날이 갑작스럽게 생각이 났다.

어제는 아내에게

"여보,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소?"

"……."

"잘 생각해봐."

"뭔 날이껴?"

"내일은 섣달 초닷샛날일세. 그 오래 전 우리 아부지께서 호박떡을 해서 이웃과 함께 나눠먹고 했었소. 우리 해 봅시다."

이렇게 살살 아내를 꾀어 만든 것이다.

 

우리 이웃에는 연세가 아흔여덟인가 하는 안어른이 참 근력도 좋고 부지런하여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동네를 돌아다니며 재활용 종이나 상자를 모으면서 어렵게 살아가신다.

그 할머니께 호박떡을 조금 드렸다. 커피를 좋아하시기에 커피와 먹걸리도 함께.

이렇게 이웃과 나눠 먹는 호박떡이 오늘따라 참 맛있었다.

그냥 지나가면 안 되겠다싶어 이렇게 그 모습을 실어보았다. 

그런데 맛은 그 옛날 그 떡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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