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마당/▶조상기림

2012.11.20.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김녕김씨 암천 박산골[博山谷] 시제

한봄김국빈 2012. 11. 23. 20:33

 

 

16184-16194

 

25세손 갈은(葛隱) 상익(祥益) 고조고(高祖考)의 묘소에 핀 꽃망울

 

  

 

 

 

박산골 시제 참례자

국만(국빈), 경화, 병철, 봉균(병기씨 3남, 정화), 영균(병극 장남), 영양김순임(원빈, 해용 배), 정순(국만 배)

 

 

 

 

 

 

 

 

 

 

[갈은처사김공상익지묘] [배유인광산김씨 병자(1996) 정월 이장 합폄]

자 만운, 호 갈은 (1804년생-1967.2.22.졸)

지보면 암천리 박산골 비석있음.

배-광산김씨(?생-1870.7.28.졸 묘 소망동에서 이장 공의 묘에 합봉. 부-덕창(德昌)

 

갈은 공의 장남-옥진(玉振 관명 진옥), 야기재, 효자,

차남-숙진(淑振), 통정대부

삼남-사진(泗振), 약농, 통덕랑

 

 

[효자야기재김녕김공옥진지묘 배유인김해김씨]

휘 振玉(진옥), 자 윤여(潤汝), 호 야기재(夜氣齋), (1825년생-1870.11.26.졸)

출천지효자(出天之孝子)임. 한학자로서 친필 유고 40여 권 교남지(矯南誌) 군지(郡誌) 면지(面誌) 족보(族譜) 등에 효행사실이 등재되어 있고 대죽리 입구에 효행비가 세워져 있음.

묘-소망동에서 암천리 박산골 임좌로 이장 합장. 상석 있음.

배-김해김씨(?생-????.4.24.졸) 부 경배(景培)

 

------

효자 옥진공

공의 휘는 玉振(옥진), 자는 潤汝(윤여), 호는 夜氣齋(야기재)시니 영사공 휘 遵(준)공의 15세손이신 휘祥益(상익) 공의 맏아드님으로, 1825년에 출생하셨다.

공은 어릴 때부터 孝友(효우)하시어 형제간에 우애하시고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셨다.

또 학문을 좋아하셨으므로 고을 사람들은 공을 일컬어 장차 혈식군자나라의법전으로제사지낼군자가 될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공의 나이 15세 때 어머님광산김씨이 병이 들어 수족이 마비되고 온몸에 부스럼이 나고 그 자리에 고름이 나와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어렵게 되자, 공은 식사 때 밥을 떠먹이시고 대소변 변기를 갖다 드리고 의복이 더러워지면 갈아입히고 부스럼 자리의 고름을 빨아내었다.

그리고 5리나 되는 낙동강 물을 길어다 약을 다려드리면서 단을 쌓고 하늘에 어머니 병환의 쾌유를 빌었다.

또 병세가 위독하면 대변의 맛을 보시고 병세를 가늠하기를 장장 7,8년간 하셨으나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원이 말하기를, 올빼미 기름을 내어 약에 타시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 하여 올빼미를 구하려고 하던 차 갑자기 올빼미 한 마리가 처마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래서 공은 그 올빼미를 잡아서 해 드렸다.

또 의원이 말하기를 산삼이 신효가 있다고 해서 공은 태백산 깊은 곳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산신께 제사지내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초막 밖에 앉아 있었다.

효감소치로효성에감동하여 그 호랑이는 밤마다 와서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백발노인이 꿈에 나타나 산삼 있는 곳을 가리켜 주었다.

꿈에서 깬 공은 산신이 가리켜 준 곳을 찾아가 산삼 세 뿌리를 캐어다가 드린 뒤 차도가 있어 70이 넘도록 사시다가 천명을 다하시니 공은 말하기를 “내 병든 어버이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마땅히 돌아가 모실 따름이다.” 하셨다.

문득 1890년 2월 20일 별세하시니 같은 날 (호명면 황지리) 소망실 시루골 선산 아래 신좌에 상하로 안장하였다.

이러한 소문이 전파되자 지방유림과 군수가 연명으로 도지사에게 상언하여 도지사로부터 표창한 바 있었다.

-88무진보, 김녕김씨세덕록 187쪽에서-

 

※ 야기재 종증조 할배는 친필유고 40여권을 내었으며, 矯南誌 郡誌 面誌 족보 등에 효행사실이 실려 있고 대죽리 입구에 효행비가 세워져 있음.

1870년 11월 26일 졸. 묘는 호명면 황지리 소망동소망실에서 암천리 박산골 임좌로 이장. 상석 있음. 배 김해김씨 4월 24일 졸. 묘 같은 벌안. 父 景培

 

호명면 황지리 자연부락 소망실, 소망동(所望洞)

사람은 살아도 마을 이름은 없었는데 마을 주위의 산이 높고 험준(險峻)해서 호랑이가 많이 살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줌으로 그 피해를 막고자 범이 도망가라고 호(虎) 망곡(亡谷), 곧 오망실이라고 하던 곳인데 그 후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아 소망(所望)을 이루었다하여 소망실이 되었다고 전한다.

 

 

 

 

 

 

[통덕랑김공휘사진지묘]

자 성가(聖可), 호 약농(藥農), 1840년생-1874.11.30.졸

지보면 암천리 박산골 자좌 비석 있음.

배-안동권씨(?생-6.9.졸)-약농 공 묘소 아래 길 바로 밑 상석 있음. 부-채하(采河)

 

 

 

 

석천처사김녕김공한빈지묘 배경주이씨합폄 배안동김씨 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