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42년/▶월탄국교

19710913 조현천 제자의 편지

한봄김국빈 2023. 6. 2. 16:31

수제자의 편지를 다시 읽는 느낌이 새롭다.

자식이 나보다 더 낫고

제자가 나보다 더 나으면 그게 기쁨이 아니겠는가.

존경하는 선생님

찌는 듯한 무더위도 세월의 흐름에 못 이겨 저 산 멀리 사라지고 가을 (      ) 산들바람이 책을 가까이 하게 하고 있읍니다.

그간 선생님 건안 좋으시고 가내 두루 균안하시온지요?

선생님의 기억에 되새길 수 없을 만큼 잊혀진 현천입니다.

벌써 졸업한 지도 4년이란 세월이 흘렀읍니다.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저의 생애에 씻지 못할 죄를 조금이나마 벗을는지 모르겠읍니다. 변명할 여지도 없읍니다. 모든 것이 선생님을 향한 부족한 저의 성의였읍니다.

선생님의 옛날 그 넓고 인자한 맘으로 용서하세요.

저희가 지난 7월 28일(수) 우리 7회 졸업생 친목회를 모았읍니다.  시일이 없어서(보충수업으로) 급히 소집하느라고 선생님께 서신도 못 드린 채 전화로 연락했더니 불행히도 훈련 나가시고 안 계시더군요. 그냥 부탁만 하고 이튿날 35명이 모여 기다리다가 12시에 회를 진행했읍니다.

오전에 합창과 노래로 조용히 진행하고 오후 3시에 운동장에서 대구대회를 3 팀으로 갈라 치열하고 흥분된 게임을 치렀읍니다.

조그마하나마 기념으로 배구공 한 개를 선사하고 조용히 그리고 뜻 깊게 보냈읍니다만 혹시 모교에 어떤 좋지 않은 인상을 주지 않았는지 몹시 두렵습니다.

선생님!

지금 제자 현천이는 연합고사를 거쳐 다행히도 명문 고교인 대구고등에 입학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열심히 합니다만 정말 힘들어요.

안 하고는 못 배길 처지에요. 뭘.

학교에서 보충 수업을 한다고 즐겁은 여름방학을 대구에서 보내게 됐읍니다.  밤에는 학원엘 다녔읍니다.

저는 원래 국민학교 때부터 개구쟁이 심술꾼으로 이름이 높았읍니다만

 지금은 어떨까요?  선생님께서 해석해주세요.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읍니다만

그래서 뭐니 뭐니 해도 국민학교 때가 제일 좋았어요.

학업에도 별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천진난만한 때가  제일 좋았어요.

 

그럼 옛 얘길 드리려면 한이 없겠읍니다만 다음 서신으로 미룰까 합니다.

모쪼록 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으시길 아울러 육체의 건안을 두 손 모아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71년  9월 13일

월탄 국민학교 제7회 졸업생 조현천 드림

 

630-10

대구시 서구 내당동 1구 56번지 병원 사택 3호

조현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