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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최장수마을을 찾아서] ③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한봄김국빈 2010. 2. 3. 14:29

[경북 최장수마을을 찾아서] ③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청정 자연+부지런함+無慾 "세월이 비켜가니더"
 
 
 
진성 이씨 집성촌인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마을 어르신들이 종갓집에 모였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고래등 같은 기와집 사이로 내려오는 겨울 햇살이 따사롭다. 켜켜이 기와를 이고 있는 처마가 날렵하다. 담쟁이 넝쿨이 빽빽한 돌담, 넓게 뻗은 대청마루, 양반집 규수가 수를 놓던 별채도 보인다.

고택마다 전통의 향기가 그윽한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1일 경상북도 용역 조사에서 도내 최장수마을 4곳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곳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종손이 터를 일군 진성 이씨 집성촌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옮겨 놓은 듯하다. 예로부터 대과에 급제한 선비가 많았고, 지금도 현직 박사만 32명을 배출해 '박사촌'으로도 불린다.

"할매!" 올해 100세를 맞은 전명조 할머니가 종가에 걸음하자 류도연(91) 할머니가 두 손을 부여잡는다. 지팡이를 짚긴 했지만 전 할머니의 기력은 아직 왕성하다. 어제도 산길을 따라 혼자 아랫집에 다녀오셨다.

류 할머니 역시 70대 못지않게 정정하다. "스물한살 되던 정월 초이튿날 가마 타고 시집왔어. 양반 동네에 시집간다고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할머니는 시집오던 날을 또렷이 기억해내며 수줍게 웃는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이중선(74)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바쁜 모습이다. 부인(72)과 함께 집 한쪽에 땔감을 쌓으시더니 이내 팔을 걷어붙이고 경운기 시동을 건다. 추운 날씨면 말썽을 부리기 일쑤인 경운기도 부지런한 할아버지 앞에선 얌전해진단다. 할아버지는 "추수를 끝내고 쌓아둔 볏단을 옮겨와야 한다"며 총총히 사라지셨다.

전 할머니, 류 할머니, 이 할아버지까지 백송리 어르신들에게 세월이 비껴가는 이유는 뭘까. 백송리 주민들의 첫번째 장수 비결 역시 천혜의 자연환경에 있는 듯했다. 마을을 감싼 빽빽한 소나무 숲이 쉼없이 맑은 공기를 내뿜고, 봉화~영주~예천을 가로지르는 내성천 청정수가 인접해 흐르고 있다. 박찬하(81) 할머니는 "조상 대대로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았다"며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선 누구나 오래 사는 법"이라고 자랑했다.

묵묵히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마을 노인들의 근면한 성품도 장수의 한 요인이다. 이한주(67) 할아버지는 "날 따시면 동네 어르신들은 모두 들에 나가 계신다"며 "쉴 새 없이 꿈쩍거리시는 게 오래 사는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선비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답게 욕심 없이 화합하며 살아간다. 이준희(64) 이장은 "자식들 잘 키우고 어른 잘 모시면 그만이지, 바라는 건 없다"며 "재물에 욕심 내지 않고, 다툼 없이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 동네 장수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용계댁이라고 소개한 할머니(72)는 "매년 10월 첫째주면 선몽대에서 제사를 모시는데 50년 전 시집온 첫해나 지금이나 찹쌀만 다섯 말을 해 떡을 한다"며 "제사가 끝나면 모두가 사이좋게 제수 음식을 나눠 먹는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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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02월 0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