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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술샘 예천

한봄김국빈 2010. 8. 20. 11:40

 



 

예천(醴泉)이라는 지명은 고을의 물맛이 단술과 같다는 뜻이다.

 

 

경상북도 서북부에 자리한 예천군(醴泉郡)은 동쪽은 안동·영주시, 서쪽은 문경시와 접하고, 남쪽은 의성군·상주시, 북쪽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룬다.

 

지형적으로 북쪽은 묘적봉(1,148m)~뱀재~싸리재~저수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과

맞닿아 있고, 저수령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매봉(865m)~국사봉(728m)~꽃재~왕의산(339m)

지맥은 문경과 경계를 이루며 내성천과 금천 사이로 빠져나간다.

 

동북쪽은 백두대간 묘적령에서 가지쳐 나온 옥녀봉(890m), 자구산(784m), 부용봉(688m) 등이 솟아있고, 남쪽은 낙동강이 하회마을 하류의 구담교부터 의성과 경계를 이룬다.

 


예천의 고을 중에서 최남단의 풍양면만 낙동강 건너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의 내성천과 낙동강 사이에는 백두대간 옥돌봉(1,242m)에서 남쪽으로 가지쳐 봉화와 풍산을 지난 지맥에 학가산(870m)·보문산(643m) 등의 산이 우뚝 솟아 있다.

 

백두대간과 가까운 북부는 산간 지역이고, 서남쪽은 낙동강과 내성천이 빚은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전체적으로 북고남저의 지세를 이룬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수주현(水酒縣)이었고 757년(경덕왕 16년)에 예천군(醴泉郡)이라 처음 불렸다.

 

고려 때에는 보주(甫州), 양양(襄陽)이라 했으며 조선 태종 때인 1416년에 다시 예천군이 됐다.

 


1895년 예천군과 용궁군이 따로 나뉘었고, 1896년 경상북도에 속했다.

1906년 동로·화장면이 문경군에, 다인면이 비안군에 편입됐고,  1914년 용궁군이 다시 예천군에 통합됐으며 1923년 안동군 감천면과 영주군 상리·하리면이 예천군으로 편입됐다.

 

1937년 예천면이 읍으로 승격됐다. 2003년 현재 예천읍을 비롯해 용문·상리·하리·감천·보문·호명·유천·용궁·개포·지보·풍양면 등 1읍 11면으로 되어 있다.

단술 예(醴) 자와 샘 천(泉) 자를 쓰는 예천(醴泉)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수주(水酒)에서 유래됐는데, 이는 고을의 물맛이 단술과 같다는 뜻이다.

 

예천읍 노하리에 이 유래와 관련 있는 샘이 있다.

경지면적은 총면적 661㎢ 중 30%인 198㎢ 그 중 논이 109㎢이고, 밭이 89㎢로 주산업은 농업이다.

 


주요 농작물은 풍양·지보·호명면의 쌀·보리, 용문·감천면의 고추, 보문·상리면의 잎담배, 감천·상리·지보면의 사과, 그리고 지보·풍양면의 감 등이다.

 

특산물로는 상황버섯·양란·영지버섯·옹골진잡곡·쪽파·참기름·토마토·표고버섯 등이 있으며, 예천 참우는 특허청에 상표등록이 되어 있는 고급육 한우로 유명하다.

 

임업(면적 368㎢)은 상리면·용문면·보문면 등 북부 산간지역에서 활발하며,  수종은 혼효림과 침엽수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선시대엔 문경새재와 예천 남쪽의 삼강나루로  영남대로가 지나면서 교통이 편리한 편에 들었다.

 

동북부에 인접한 영주에서 중앙선 및 영동선 철도가 연결되고 경부선의 조치원역과 중앙선의 봉양역을 잇는 충북선이 예천읍을 지난다.

 

또 문경과 안동을 잇는 34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하고  남북으로는 상주·군위와 영주를 잇는 28번 국도가 지난다.

 

 몇 년 전 영남 내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접근이 용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