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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향수

한봄김국빈 2010. 7. 21. 17:51

<출전: 서울고 12회 카페모임>

 

향수 / 박인수와 이동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1)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2)얼룩백이 황소가 3)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음-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돌아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4)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우우 하늘에는 성근 별이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미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5)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가사의 고찰======

1)지즐대다=지절대다=(사람이)낮은 목소리로 바르게 몹시 떠들썩하게 자꾸 이야기하다. (새가) 소리를 내어 자꾸 크게 울다.

2) 얼룩백이='얼룩빼기'의 비표준어. 털빛이 얼룩진 동물이나 겉이 얼룩진 물건

3)해설프다=충청방언, 햇살이 설핏한 상태에 있다. 설핏하다=해가 져서 그 빛이 약하다

4)함초롬하다=담뿍 젖어 있거나 어떤 기운이 서려 있는 모양이 차분하고 곱다.

5)돌아앉아='둘러앉아'의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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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향수" 정지용 - 휴먼다큐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정지용과 그의 詩碑> 

시집: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 집필 의도 및 감상 ***

고향이란 인간의 원초적(原初的) 생(生)의 뿌리이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 그러므로 시인이 고난과 시련의 현실에 놓여 있을 때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과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 시는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재학 시절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국 땅에서 낯선 환경 속에 생활하며
간절한 그리움이 이 시를 쓰게 한 배경이라 할 것이다.
토속적인 어휘와 창가조(唱歌調)의 구성 형태를 취하면서도 표현에 있어 감각적 심상을 사용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감정의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모든 정서를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처리한 것은 이 시가 한국 시사(詩史)에 있어 한 단계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정지용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지만 시 <향수>의 고향 배경은 외갓집이 있었던 충북 옥산면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옥천’에는 넓은 벌이 없기 때문이다.

시 <향수>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고향의 근원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1902년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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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1세)음력 5월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연일정씨 정태국과 하동정씨 정미하 사이에 독자로 태어남. 지용의 아명은 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태몽을 꾸었다하여 지용이란 발음의 한자를 맞춘 것임.
1913 (12세) 동갑인 은진 송씨인 송재숙과 결혼
1918(17세) 휘문고보에 입학, 이때부터 습작 활동을 시작함.
1919(18세) 12월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이 발표됨
지용의 유일한 소설. <요람> 동인지를 김화산, 박팔양,박소경 등과 함께 주도하였음.
1922(21세) 휘문고보를 졸업.
이때까지 계속 아버지 친구인 유복영의 집에서 생활함.
1924 (23세)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경도에 있는 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
1926(25세) 공적인 문단활동이 시작됨.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 및 시조를 발표함.

1929년 동지사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일본 문예지 <근대풍경>에 일본어로 된 시들도 많이 투고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 북원백추의 관심을 받게됨.

이시기의 주요작품으로 기차, 해협, 다시해협, 슬픈 인상화, 풍랑몽, 옛이야기 구절, 호면, 새빨간 기관차, 뻣나무 열매, 오월소식, 발열, 말, 내 마음에 맞는이,  무어래요, 숨ㅅ기내기, 비둘기 등이 있음.
1928 (27세) 장남 구관이 태어남 (음력 2월 1일)
1929 (28세) 동지사대학교를 졸업. 휘문고보의
영어교사로 이후 16년간을 재직함.
1930(29세)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됨.

주요작품으로는 이른봄 아침, Dahlia, 경도 가모가와 선취, 바다, 피리, 저녁 햇살, 갑판우, 홍춘, 호수1,2 등이 있음.
1933(32세) <카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음.
<구인회> 문학친목단체를 결성. 해협의 오전 3시, 산문 소곡 등을 발표.
1934(33세) 장녀 구원이 태어남.
1935(34세) 제 1시집 "정지용시집"을 시문학사에서 출간
1937(36세) 음력 3월, 북아현동 자택에서 부친 돌아가심.
1939(38세) <문장>지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 시킴.
1941(40세) 제2시집 "백록담"을 문장사에서 출간.
1945(44세)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로 직장을 옮김. 담당과목은 한국어와 나전어(羅典語)
1946(45세) 경향신문이 주간이 됨. "지용시선"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
1947(46세) 경향신문사의 주간직을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복직함. 서울대 문리과대학 강사로 출강하여 *시경*을 강의함.
1948(47세) 2월 이화여자대학교를 사임하고
녹번리 초당에서 서예를 하면서 소일함.
1949 (48세) "문학독본"이 박문출판사에서, "산문"이 동지사에서 출간됨.
1950(49세) 6.25동란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에 구금, 서대문형무소에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같이 수용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같이 수감되었다가 그 후 폭사당한 것으로 추정 (부인 송재숙씨는 70세 일기로 1971년 4월 15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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