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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존중이 사라지는 사회

한봄김국빈 2011. 12. 14. 14:01

 

배려와 존중이 사라지는 사회

강갑생 칼럼


사회부문 차장 kkskk@joongang.co.kr | 제220호 | 20110529 입력


며칠 전 지하철을 탔다가 본 장면이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 일반석 쪽에서 힘겹게 손잡이를 붙들고 서 있었다. 무심코 그 앞에 앉아 있는 승객을 쳐다봤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연방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간혹 할머니 얼굴을 쳐다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리 양보는 없었다. 그녀가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두세 명의 노인이 그 앞에 섰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또 한 번은 여고생 네 명이 좌석에 앉아 웃고 떠드는 앞에 자그마한 키로 간신히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노인을 봤다. 한참 뒤 노약자석에 자리가 난 것을 확인한 노인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길 때까지 여고생 중 누구도 “여기 앉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들이었다.


95년에 보도된 한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설문 대상 젊은이 3명 중 2명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피곤하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 안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새롭지 않은 장면일 수 있지만 아마도 지금은 자리를 양보하는 비율이 훨씬 더 낮아졌을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리에 앉은 젊은 승객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윽박지르는 노인들 말이다. 때론 욕설까지 쏟아진다.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하는 건 또 다른 이유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쉽다. 이런 장면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8명꼴로 ‘노인들이 버스, 지하철 내에서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 불쾌하다’고 답했다.


지하철 내 노약자석을 둘러싸곤 다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와 노인 간 다툼이다. “왜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아 있느냐”는 노인들의 책망, “그렇다고 왜 욕을 하고 망신을 주느냐”는 젊은이들의 항의가 교차한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만 한 해 평균 200건 가까운 자리다툼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어찌 보면 늘 있어왔던 모습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우려되고 걱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자칫 우리 사회에 첨예한 갈등을 불러올 불씨들이 지하철 자리쟁탈전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예절교육의 부재다. 노인을 공경하는, 남을 배려하는 우리의 전통예절을 요사이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갈수록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여보내기 위해 시험문제 하나 더 풀게 하는 데만 집중해 온 건 아닌가. 그래서 정작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을 교육하는 데는 소홀한 게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한 전문가는 “요즘 젊은이들은 도덕적 원칙보다는 경제적 가치와 효율을 더 중요하게 교육받고 경험한 세대”라고 진단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도덕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 도덕적 가치가 땅에 떨어질 때 불어닥칠 부작용은 굳이 강조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더 큰 걱정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고 있는 노령화 문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만 판단해도 지금처럼 버스나 지하철에 노인이 많은 적은 없었다. 과거에도 노인을 대상으로 한 요금 면제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노인 승객이 많지는 않았다. 특히 낮시간대에는 노약자석은 물론 일반석에도 상당수가 노인이다. 자리가 없어 서 있는 노인도 부지기수다. 서울·인천·대전 등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전국 7개 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전체 무임승차 인원은 3억3200만 명이나 됐다. 상당수가 노인이다. 운임 손실도 3400억원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2000년 7.2%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1%로 껑충 뛰었다. 또 2018년에는 14.3%에 이르러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하철 내 노인과 젊은 세대 간 자리 다툼은 더 많이 벌어지면 벌어졌지 줄지는 않으리라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얼핏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노년층과 젊은 층의 마찰이 결국 더 큰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결코 과하지 않다. 서로 배려하지 않고 인정하지 못하고 충돌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뾰족한 해결책을 모르겠다. 다만 이런 상황, 이런 우려에 대해 다같이 한번 고민해 보자는 얘기다. 서로 탓하기 전에 좀 더 배려하고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