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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백두를 가다] 보문면 앙고개길 '무명 열녀비'

한봄김국빈 2009. 6. 15. 13:21

[낙동·백두를 가다] 보문면 앙고개길 '무명 열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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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면 독양리에는 앙고개가 있고, 고갯마루에는 무명 열녀비가 있다.

예천 사람들은 '앙고개 열부비'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 옛날 초가단칸에 살던 부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조선시대 대개의 열부·열녀비는 아무개의 부인, 딸 '누구'로 기록돼 그 이름이 분명했고, 양반가의 여인네가 많았다. 이름도 없고 번듯한 가문의 여인도 아닌, 가난한 아낙네의 사연이 얼마나 애틋했을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고갯마루에 앞도 보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남편과 불구의 남편을 섬기는 착한 부인이 살았다. 남편의 몸이 불구이니 살림살이도 가난할 수밖에. 부인은 걸을 수 없는 남편을 늘 등에 업고 구걸을 하며 힘든 세월을 이겨내야 했다. 가난하나 부인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부부의 금슬만큼은 이 세상에서 제일이었다. 자기를 업고 구걸을 하는 부인이 너무나 고맙고 한편으로 가엾은 남편은 부인에게 업힌 채 늘 부인의 가슴을 만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이 죽자 "남편이 늘 만지던 자기의 젖가슴을 어이 잊을 수 있겠느냐"며 유방을 베어 관 속에 넣고 장사를 지냈다. 젖을 벤 부인의 상처는 심한 출혈을 일으켰고, 부인 역시 남편의 뒤를 따라 가버리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착한 부인의 절개와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은 정려를 내렸다. 이에 지역 유림에서 고갯마루에다 열녀비를 세우고 고개 이름을 '안고개'라 했다고 한다. 지금의 앙고개는 안고개를 쉽게 부르다 보니 발음 그대로 '앙고개'로 변한 것으로 예천의 향토사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또 안고개의 안자는 기러기 안(雁)자로 역시 부부의 사연과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비록 무명의 아낙네이지만 조선 500년 여성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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