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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당조기(湖堂朝起)

한봄김국빈 2016. 8. 21. 12:20

湖亭朝起(호당조기)

호당에서 아침에 일어나

-강극성(姜克誠)(1526-1576)-

 

江日晩未生

강일만미생

시간 늦도록 해는 안 뜨고

 

蒼茫十里霧

창망십리무

아스라이 십리길 안개만 자욱

 

但聞柔櫓聲

단문유로성

살랑살랑 노 젓는 소리만

 

不見舟行處

불견주행처

배가는 곳 어딘지 보이지 않네.

 

만미생(晩未生)-늦도록 나타나지 않다

창망(滄茫)-아스라이 아득한 모양

()-안개.

단문(但聞)-다만 들릴 뿐

유로성(柔櫓聲)-부드럽게(들릴 듯 말 듯)노 젓는 소리

 

물가 정자에서 새벽에 일어났다.

강가엔 아침안개가 자욱한데 해는 뜰 요량이 전혀 없다.

사방을 둘러 봐도 짙은 운무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밤사이 구름 위 신선나라로 날아올라 온 것은 아닐까?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찌그덕 찰랑 찌그덕 찰랑 노 젓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다. 누굴까? 이른 새벽에 노 저어 강을 가로지르는 저 사람은?

소리 따라 귀를 기울여 봐도 노 젓는 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데

끝내 배는 보이지 않는다.

에라 어제 쳐 놓은 그물을 건지러가는 어부려니

안개 속에서 덜 깬 술을 깨우고 찌그덕 찌그덕 멀어져간 노 젓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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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극성(姜克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실(伯實), 호는 취죽(醉竹)

우의정 희맹(希孟)4대손

할아버지는 태수(台壽)이고

아버지는 사용(司勇) ()이며

어머니는 김안국(金安國)의 딸이다

1546(명종 1) 진사가 되었고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3년 뒤 다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다

처음 예문관에 뽑혔다가 곧 홍문관정자로 옮겼으며

1555년에는 김귀영(金貴榮), 이량(李樑) 등과 함께 사가 독서한 뒤

이듬해 부수찬에 올랐다.

이어 문학지평부교리교리부응교장령사간 등 청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563년 검상·사인을 거쳐 군자감정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관직생활은 당시 권세를 잡고 전횡하던 이량을 추종한 결과였으며

사신(史臣)들은 그를 이량의 무리였기 때문에 청현직(淸顯職)을 역임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1564년 이량이 축출당하자 계속적인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 당하였으며

1574년 조정에서 파직된 그의 재서용 논의가 시작되어 대간의 반대가 있기도 했지만

과거급제자인 점이 고려되어 다시 관직에 나아가

제용감정(濟用監正)을 거쳐 장단도호부사를 지냈다

 

 

행신(幸臣: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 이량과의 친분으로 많은 비난과 역경을 겪었다

사가독서 때 사온(賜醞:궁중에서 하사된 술)에 취해 있다 해질녘에 깨어나 겨우 지어 바친 시로

명종으로부터 찬탄과 함께 말 한 필을 하사받는 영광을 누렸으며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출처][소암] 강가 - 강극성(姜克誠)|작성자소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