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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마을의 취락 구조

한봄김국빈 2020. 8. 31. 11:23

1. 종가와 종손

동성마을의 중심은 종가(宗家)에 있으며 종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종손(宗孫)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흔히 외부 사람들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종가이다.

종가가 동성마을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은 종가의 입지적 성격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마을의 가장 중앙에 처음으로 들어온 조상의 신주를 모셔야 하는데, 이때 그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가지고 있는 대종가가 마을 중앙에 자리하게 된다.

종가가 있는 곳은 명당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대체로 종가는 주산(主山)이 끝나는 낮은 구릉에 자리하여 앞으로는 하천을 바라보고 있다.

가령 천전의 의성김씨 종택도 지내산의 주맥(主脈)이 끝나는 낮은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부터 종가의 몰락은 곧 문중 전체의 몰락을 의미했다.

따라서 문중에서는 종가에 대한 물질적ㆍ정신적 도움과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보종(補宗)이라고 한다.

물질적 보종이란 종가가 체통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을 말한다.

종가의 경우 일 년에 수십 차례에 이르는 조상제사와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 접대로 경제적 지출이 상당하다. 그러나 봉제사와 접빈객이 종가에게 주어진 의무이므로 이를 게을리할 수도 없다. 이처럼 종가가 충실한 의무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필요로 하는데 문중에서 이와 같은 물질적 보조를 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사를 위한 위토(位土)를 마련해 준다거나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몰락한 종가를 일으켜 세울 때도 문중이 적극 앞장선다.

뿐만 아니라 가옥의 내부 수리를 비롯하여 종손의 학비나 혼인 비용까지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

 

문중의 물질적 보조는 경우에 따라서는 문중 성원들로부터 개별적으로 갹출할 때도 있으나 대개는 문중의 공유재산에서 충당된다. 흔히 문중 재산은 모든 문중 성원들의 공유재산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안동 지역 각 문중의 문장(門長)들에 따르면 문중 재산이란 어디까지나 조상제사의 안전한 수행과 종가를 지탱ㆍ보존하기 위해 마련해둔 것이라고 한다.

 

정신적 보종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종가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문중에서는 종손의 혼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다. 종가의 정통성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가문 좋은 집에서 며느리를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손을 얻는 데에도 늘 신경을 쓴다. 정신적 보종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는 종가에 후손이 없어서 양자를 들일 때이다. “칠촌(七寸)에 양자 빌듯 한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촌수가 멀어질수록 양자를 얻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실제로 예전에는 8촌 이내의 당내(堂內) 범위를 넘어선 관계에서 양자를 얻는 경우 상대의 집 앞에 멍석을 깔고 엎드려 허락할 때까지 빌었다고 한다.

 

그러나 종가의 경우는 달랐다.

문중에서 내린 결정에 따라 종가의 양자로 일단 지명되면 아무리 촌수가 멀어도 보내야 한다고 한다.

 

종손에 대한 예우도 이에 못지 않다. 이를테면 문중 성원들은 항렬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지만 종손만은 예외이다. 종손보다 아무리 항렬과 연령이 높아도 종손에게 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고 종군(宗君)’이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종손은 항렬과 연령에 관계없이 문중 모임에서 늘 상석(上席)에 앉는다. 그리고 불천위 제사를 비롯한 문중 단위의 제사에서도 당연히 종손이 초헌관이 된다. 옛말에 위선조주고종인소존(爲先祖主故宗人所尊)’이라는 것이 있는데, 선조를 위해 종손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종손을 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문중에서 종손의 지위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동성 집단의 종통을 이어가는 중심적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2. 조상숭배의식

동성마을의 조상숭배의식은 제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제사는 조상과 자신을 일체화하는 상징적 행위라 할 수 있는데 자손들은 조상제사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재확인하기도 한다.

동성마을의 제사는 종류도 다양하지만 규모 또한 방대하다. 동성마을의 대표적인 제사로는 불천위 제사와 시사를 들 수 있다. 불천위 제사와 시사는 문중에서 주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족결합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불천위 제사의 경우 대부분의 이름난 동성마을에서는 여러 명의 불천위 제사를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풍산류씨의 하회에서는 세 분의 불천위 제사를 올리고 있는데, 불천위로 추대된 분들의 부인 제사까지 올린다. 불천위 제사를 지낼 때는 그 마을에 살고 있지 않는, 즉 파()가 다른 사람들과 유림에서 참가하여 성황을 이룬다. 특히 유명한 인물의 불천위 제사일 경우에는 지역 단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다. 원칙적으로 제사에 쓰이는 제수(祭需)는 문중의 위토에서 얻어지는 수입으로 마련하고 각 파와 유림에서도 제수나 제비(祭費)를 부조하기도 한다. 제관은 각 파의 대표와 유림대표로 구성되며 제사의 주관은 항렬과 연령에 관계없이 종손이 맡는다. 제사의 격식은 기제사와 거의 비슷하며 각 문중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하회의 경우에는 기일(忌日)에 해당하는 조상의 신주만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단설(單設)을 따르고 있으며의성김씨의 학봉 선생의 불천위 제사는 기일에 해당하는 조상과 배우자 곧 부부의 신주를 함께 모시는 병설(竝設)을 따르고 있다.

 

같은 성씨 중에서도 파()에 따라 제수의 종류와 진설 방법이 다른 경우도 있다.

예컨대 포는 좌포우혜(左脯右醢)’의 격식에 따라 가장자리에 놓는 것(변포:邊脯)이 일반적이지만,

진성이씨의 상계파(上溪派)에서는 포()를 중앙에 놓는다(中脯). 이에 대해 상계파에서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 상계파의 어느 집안에 일찍이 남편을 여윈 여자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제사를 지내려고 진설을 하는데 제상의 가장자리에 놓은 포가 여자의 치맛자락에 걸리고 또 아이들 소맷자락에 걸려 제물이 흩어지는 일이 잦았다. 이를 본 문중 어른들이 커다란 포가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진설에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하여 그 후부터 포를 중앙에 놓도록 결정했다라는 이야기이다.

같은 진성이씨이지만 송당파(松堂派)에서는 포를 오른쪽에 놓는다.

 

하회의 겸암파(謙菴派)에서는 닭을 엎어 쓰는데

서애파(西厓派)에서는 뒤집어서 사용하며,

겸암파에서는 김을 쓰는데

서애파에서는 미역을 쓴다.

이와 같은 제사 격식의 다양함을 두고 항간에서는 가가례(家家禮)’라고 한다.

 

시사는 4대조 이상 조상들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로서 1년에 한 번 지낸다.

시사는 제사 자체도 성대하지만 시사를 지낸 다음 날 문중 모임을 갖기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사는 대외적으로는 문중을 과시하는 기회이며 대내적으로는 문중 단결을 도모하는 기회가 된다. 시사를 지낼 때는 조상의 세대(世代), 재실(齋室), 묘소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10월 초순에는 상대(上代) 조상의 시사, 중순에 중대의 시사, 하순에 하대의 시사를 지내는데, 이때 10월을 넘기지 않도록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훌륭한 선조의 시사에는 될 수 있으면 모든 후손들이 참석하도록 하는데 진성이씨의 퇴계(退溪) 선생, 풍산류씨의 서애(西厓) 선생, 의성김씨의 학봉(鶴峰) 선생의 시사에는 수백 명의 후손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시사를 지낸 후에 문장과 문중 어른들은 제수와 차림새, 제사를 행하는 태도와 방식 등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3. 항렬

항렬을 우선하는 대인관계 동성마을은 특정 조상의 후손들이 모여서 형성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친족 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대부분이 친족 관계로 이루어진 동성마을에서는 항렬(行列)과 촌수가 마을의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서열이 된다. 따라서 마을내의 인간관계는 이러한 항렬과 촌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엄격한 상하질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항렬이 연령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항렬은 상대방보다 높지만 연령이 아래일 경우 두 사람의 관계는 무척 어색해진다. 특히 이들이 같은 마을에 살면서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난처해진다.

물론 항렬 하나가 나이 열 살을 접고 들어간다는 말처럼 상대방보다 항렬은 낮지만 나이가 여덟 살 정도 위인 경우에도 나이 어린 상대방에게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요즘은 연령이 대인관계를 규정짓는 기준이 되어 버린 탓에 무조건 예전처럼 항렬을 따르기도 힘들다.

실제로 안동 주변의 동성마을에 가면 연령을 완전히 무시하고 항렬만을 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보다는 오히려 항렬을 무시하고 연령을 따르는 경우가 흔한 듯하다.

특히 항렬과 연령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호칭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가령 항렬로 따지자면 아재(아저씨)나 할배(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사람이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경우에 이를 아재혹은 할배라고 부르기란 참 민망하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아재나 할배 대신에 아잼할뱀이라고 부른다. 아재나 할배에 해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항렬로 보면 아들과 손자뻘이지만 그렇다고 이름이나 자()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택호 + 어른이나 + 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동성마을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탓에 외부에 대해서 상당히 배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배타성이 동성집단 내부에서 발휘되면 결속력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외부집단 그 중에서도 마을내의 각성받이들과의 생활에서 배타성이 발휘되면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특히 이와 같은 동성마을 혹은 동성집단의 배타성은 지역사회에서 많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4. 혈통

혈통에 기반을 둔 마을조직 동성마을에는 여느 마을처럼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는 동장을 비롯한 반()과 개발위원회 등의 각종 조직들이 결성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조직들은 동성집단만이 아니라 마을내의 각성받이들과 함께 꾸려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사 마을에 비해 동성마을에는 동성집단의 혈통에 기반을 둔 조직들이 유난히 많다. 여기서 하회의 풍산류씨의 조직을 보기로 하자. 풍산류씨는 동성집단을 중심으로 화수회(花樹會), 족회소(族會所), 양로소(養老所), 종당계(宗堂契) 등의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화수회는 화수계(花樹契) 또는 대문회(大門會)라고도 하며, 혈연적 지파(支派)와 거주지역을 뛰어 넘어 풍산류씨라면 누구나 소속하는 대동적 조직이다. 화수회의 역할은 동성집단의 친목도모, 선조의 유물관리, 제사와 시사의 봉행, 문중재산의 관리 등이다. 족회소는 조선 초기무렵 봉산령(封山令)에 의해 선조의 묘를 잃어 버렸는데, 이때부터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모든 후손에게 묘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둔다는 취지에서 겸암ㆍ서애선생과 그 선친 입암공이 만든 것이다.

현재 족회소에서 봉사하고 있는 묘소는 여섯 곳이다.

원래 족회소는 화수회의 산하조직이었으나 화수회가 점차 제구실을 하기 어렵게 되자 지금은 족회소가 화수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족회소에서 원래 화수회에서 담당하고 있던 유사(有司)선출, 결산보고 등의 일도 맡고 있다.

양로소는 풍산류씨 중에서 회갑을 지낸 어른들을 위한 모임이다. 이를테면 여름철에 경로행사를 베풀거나, 세모에 세찬(歲饌)을 돌리는 등의 일을 한다. 그리고 종당계는 족보를 편찬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출생자, 사망자를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 외에 파를 중심으로 한 조직들도 있다. 겸암의 묘소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의 모임인 화산소(花山所)와 서애의 묘소를 중심으로 한 수동소(壽洞所)라는 모임이 있다.

이들 소()단위로 위토와 재실을 따로 갖고 있으며 위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제사를 담당하고 제각기 모임을 갖기도 한다. 위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안동지역의 대부분의 문중에서 결성한 조직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것들이다. 이러한 조직을 통해 유교 격식에 따라 조상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묘소를 관리하고, 조상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족보를 간행함으로써 조상과 자신들과의 연계성을 확고히 다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 다른 사례를 볼 것 같으면 지례의 의성 김씨 문중에는 조상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위소(祭位所), 손님 접대에 따르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접빈소(接賓所), 문중의 장로들과 노인들의 모임을 위한 의장소(毅長所)와 노인소(老人所), 산림의 보전과 유지를 위한 금양소(禁養所), 조상과 관련된 사업(묘비의 입석, 문집간행, 정자나 서당ㆍ종택의 보전)을 위한 추원소(追遠所)와 영건소(營建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강학소(講學所) 등과 같은 조직들을 만들어 두고 있다. 동성마을의 조직 가운데 조상제사와 별로 관련이 없는 것들은 점차 원래의 성격을 잃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의성 김씨의 천전에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산(宗山)을 중심으로 의성김씨들만의 산림계(山林契)를 형성하고 있다. 산림계는 종산을 지키고 연료를 채취하기 위해 만든 계로서 원래는 의성김씨들만을 중심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씨 구별없이 천전에 거주하는 모든 집들이 회비만 내면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동성마을이 예전처럼 동성집단만이 아닌 각성받이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된 데에는 다음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농지개혁 등에 따라 마을 내의 신분구조가 크게 바뀌어 신분의 우열이 사라진데다가, 마을에 살고 있던 동성집단이 상당수 밖으로 이주함에 따라 동성집단의 집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동성마을도 이제 더 이상 동성집단만으로 마을생활을 꾸려나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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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자료에서